“ 매주 목요일마다 당신이 항상 하던대로 신발끈을 묶으면 신발이 폭발한다고 생각해보라.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이런 일이 항상 일어나는데도 아무도 불평할 생각을 안 한다. ”- Jef Raskin
맥의 아버지 - 애플컴퓨터의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주도
2025년 여름, 울산에서 파주와 고성까지! 땅굴과 분단 현실을 마주한 감성여행
뜨거웠던 여름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켰다.
올여름휴가에는 또 한 번 장거리 여행을 도전했습니다. 7월 30일 아침 일찍 울산을 떠나 경기도 파주 임진각과 DMZ 관광, 그리고 강원도 고성까지 다녀오는 1박 2일 일정이었죠. 사실 1박 2일이라기보단 무박 2일이라고 봐야겠죠? 왕복 1300km에 달하는 거리를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는 생각을 하니 설레고 두근거림이 가득했습니다. 무더운 한여름 날씨였지만 맑은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던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달려왔던 그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위 노래와 함께 글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목차
여행, 설레는 출발과 끝
파주 임진각과 DMZ 땅굴 투어 도전
이른 아침 6시 40분경 집을 나서자마자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중간에 문경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다시 북쪽을 향해 달렸습니다. 약 6시간 운전 끝에 낮 12시 40분경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임진각은 휴전선 최남단에 있는 관광지로 DMZ 안보 관광의 출발점입니다. 지난번 임진각을 방문했을 때는 인기 투어 중 하나인 제 3땅굴 관광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 할 수 없었는데 이번엔 다행히 취소 표를 구해 극적으로 관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예약을 미리 하고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잘못하면 현장에서도 표를 예매 못해서 그냥 돌아와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임진각에서 신분 확인과 출입 신고 절차를 거친 후 DMZ 투어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군 검문소를 통과 해 민간인통제구역(CCZ)으로 들어갔고, 따로 안내원은 없어 버스기사님이 마이크로 현재 어디를 지나고 있고 이런 것을 알려주십니다. 가는 길에 도라산역과 남북출입사무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목적지인 제 3땅굴로 향했습니다. 제 3땅굴은 1978년 대한민국이 발견한 북한의 남침용 땅굴로 휴전선 남쪽 435M 지점까지 파여 있었습니다. 전체 길이 약 1.6km 지하 깊이 약 73m에 달하는 이 땅굴은 높이 2미터 남짓의 규모로 한 시간에 무려 3만 명의 군인을 대한민국으로 이동시킬 수 있을 만큼 대규모였다고 합니다. 발견 당시 북한은 자신들이 판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석단을 캐던 굴이라고 우겼지만 실제 내부 벽은 화강암 지대로 탄광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제 3땅굴을 내려가기 위해 소지품을 별도로 보관을 하고 내려갑니다. 내부는 2미터 남짓의 높이가 있어 들어갈 때 헬멧을 착용하고 들어가게 되는데 모노레일도 있긴 한데 방문 당시 모노레일 자체는 운영하지 않았고 도보로만 이용을 할 수 있었습니다. 땅굴에 들어가면 첫 느낌은 엄청 시원합니다. 한참을 내려가야 땅굴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생각보다 있었습니다. 그렇게 땅굴을 구경하고 올라올 때 숨이 찰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사실 이때 다 올라오고 다리가 후들거리긴 했습니다(부끄러워 괜찮은 척 걷긴 했습니다.) 땅굴의 끝은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경고방송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커서 놀랬습니다. 분단의 현실이 실제로 눈앞에 다가오니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땅굴 투어 전 동영상 시청을 하는데 생각보다 볼만했습니다. 동영상 시청 후 땅굴 투어하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땅굴을 둘러본 후 버스를 타고 도라전망대를 향했습니다. 도라전망대는 서부전선 DMZ 일대를 조망 할 수 있는 전망대로 1987년 처음 일반에 공개되었다가 노후화로 2018년 관람이 중단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존 위치보다 12M 높은 곳에 신축된 도라전망대 건물이 개장하여 더 넓은 시야로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4년 문을 연 새 전망대는 3층 규모로 실내에는 교육장과 카페, 편의시설까지 갖춘 건물이었습니다. 제가 방문을 했을 때는 군인 분들도 정말 많이 계셨습니다. 맨 꼭대기 층은 갈 수 없었고 2층에서 통유리로 된 위치에서 북한 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보던 것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에선 북한 개성과 선전마을 등이 보였고 제가 갔을 때 생각보다 날씨가 좋아 뚜렷이 보였습니다. 이곳은 엄연히 촬영금지가 된 곳으로써 눈으로만 모습을 담고 왔습니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을 이렇게 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이어서 버스는 통일촌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통일촌은 민통선 내에 위치한 파주시 장단면 백연리의 주민 마을인데 일반인이 개인 차량으로는 출입을 할 수 없어 이렇게 투어 코스로만 방문이 가능합니다. 특이하게도 마을 입구에 흔한 대문이나 큰 간판조차 없었는데 외부인의 자유로운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겠죠? 통일촌은 오래전부터 장단콩과 개성인삼 산지로 유명한 곳으로 임금님께 진상되던 '장단 3백(쌀,콩,인삼)'의 생산지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매년 11월이면 장단콩 축제가 열릴 만큼 콩으로 유명한데 통일촌 직판장에서 다양한 것을 살 수 있습니다. 또 신기했던 것은 막걸리 분말 가루가 눈에 띄었는데 물에 타 마시는 즉석 막걸리라니 신기하면서도 DMZ를 떠날 때 기념품으로 하나 사 올 걸 그랬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통일촌을 둘러본 뒤 3시간 남짓의 투어 일정은 모두 마쳤습니다. 버스는 다시 임진각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고 저는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먼 길 달려온 차를 세차를 하기 위해 파주 근처 실내세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세차를 하고 잠시 쉬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임진강 근처를 이동하는 동안 마주친 미군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숙연해지면서도 한국전쟁 당시 피 흘리며 함께 싸워준 그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 도라전망대와 땅굴 등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들은 분단 상황을 그저 흥미로운 관광거리로 소비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우리에겐 아픈 역사이기에 마음 한켠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분단 현실을 외국인과 함께 마치 박제된 전시물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슬픔이 밀려왔지만 언젠가 통일이 되어 이런 관광 자체가 필요 없어지길 바라보았습니다.
밤을 달려 도착한 강원도 고성, 명파해변의 새벽
투어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었지만 저는 곧바로 강원도 고성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휴식을 포기하고 야간 드라이브에 나선 겁니다. 파주에서 동해안 최북단의 고성까지는 지도상 거리만 약 240km이며 운전으로 3~4시간 정도는 걸리는 여정입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을 가로지르는 길 혼자 운전하며 창밖으로 어두워진 풍경과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을 벗 삼아 달렸습니다. 피로가 몰려왔지만 이왕 나온 길 가볼 수 있을 때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새벽 0시쯤 되자 차 안에서 슬슬 졸음이 피어났습니다.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쐬고(사실 여름이라 그리 시원하진 않았습니다.) 음악 소리도 높여 보았지만 한계가 왔습니다. 그래도 바깥바람을 적당히 느끼면서 오니 새벽 2시경 명파해변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동해안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수욕장입니다. DMZ에 매우 가까운 탓에 해변 가장자리에 철조망이 둘러 쳐져 있고 군부대의 출입 통제도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덕분에 이곳은 일반적인 해수욕장이라기보단 캠핑장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도착하니 백사장 앞쪽에 캠핑 사이트와 관리소 등이 눈에 띄었고 바닷가로 나가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쳐져 있었습니다. 깊은 밤이라 해변 출입이 통제된 터라 파도 소리를 멀찍이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모래사장을 직접 밟아보지는 못했지만 뒤편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동해 바다의 고요한 밤하늘의 별들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적막한 해변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니 불과 수 km 너머에 금강산과 북한 땅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잠시나마 바닷바람을 쐬고 피로를 달랜 후 다시 운전대를 잡고 고성을 떠나 귀향 길을 올랐습니다. 동틀 무렵 동해 고속도로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희미한 여명이 바다를 밝히는 광경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중간중간 졸음이 몰려올 때마다 휴게소에 들러 스트레칭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스스로를 깨우며 왔습니다. 그렇게 달려 7월 31일 아침 무사히 다시 울산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주행 기록계를 보니 총 운행 거리가 약 1300km를 달려왔습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긴 거리를 달렸지만 큰 사고 없이 여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피곤함도 잊혔습니다.
마무리
이번 여름휴가 여행을 통해 나와의 약속을 또 하나 지켰다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미뤄두었던 여행을 실행에 옮기고 스스로 계획한 길을 끝까지 완주해냈으닌깐 이 기쁨과 성취감 또한 큽니다. 혼자 긴 거리를 운전하며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특히 최전방 DMZ에서 마주한 분단의 현실을 볼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휴전선 철조망과 땅굴 깊숙한 곳에서 느낀 정체 모를 공기는 제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과 평화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고속도로에서 마주친 미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군인 분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죠.
끝으로 이번 여행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졸음운전의 위험입니다. 물론 뉴스, 자료 등을 많이 접하긴 하지만 또 그냥 조금만 더라는 생각으로 출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피로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럴 땐 저처럼 중간중간 졸음쉼터에서 쉬어가는 용기(?)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전이 최우선이니깐요. 무리하게 달리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한 덕분에 저는 소중한 일상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여행을 떠날 때는 설렘만큼이나 안전수칙과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두 눈에 담은 풍경과 가슴으로 느낀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