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목요일마다 당신이 항상 하던대로 신발끈을 묶으면 신발이 폭발한다고 생각해보라.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이런 일이 항상 일어나는데도 아무도 불평할 생각을 안 한다. ”- Jef Raskin
맥의 아버지 - 애플컴퓨터의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주도
독립운동 안중근의 아들인 안준생의 이야기
虎父犬子(호부견자),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가 아닌 안중근 의사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그중 안중근 의사의 두 명의 아들 중 차남인 안중생의 이야기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역사적인 평가는 항상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지고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가 아닌 그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아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목차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 이야기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 나는 나라의 재앙이었겠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안준생은 1907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을 했습니다. 안중근의 차남이지만 그는 아버지를 제대로 보질 못했습니다.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인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갔었기에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질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안중근 의사의 거사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 이후 이들의 삶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안중근의 맏아들이자 안준생의 형인 안분도는 누군가가 준 과자를 먹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상해로 이주하여 임시정부 사람들이 불러 그쪽으로 갔으며 그 보호에 있었지만 그러던 중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그 배후에 김구 등 임시정부를 찾기 위해 상해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에 따라 임시정부의 보호에 있던 이들도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일제의 감시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또 안준생이 성인이 되고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도록 일제는 억압을 계속하여 진행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의 고위층이 안준생에게 다가와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바로 미나미 총독(제7대 조선총독)은 곧 서울 박문사라는 절에서 위령제가 열리는데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히로 히로쿠니에게 사과를 하라고 제안을 했다 사실 이 제안의 경우 제안이 아닌 협박이었습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안준생 그리고 며칠 뒤 박문사라는 절에는 믿을 수 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눈으로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박문사에 왔고 이윽고 앞에 안중근 의사의 아들인 안준생과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가 나왔고 안준생은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악수를 했다. 그날 이후 안준생은 일본 곳곳을 돌며 눈물의 화해를 재현을 하며 다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김구는 해방이 되면 반드시 죽여 응징해야 할 대상으로 안준생이라고 했으며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안준생은 그전에 느낄 수 없었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며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약국을 운영하며 풍족했고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중국 공산당을 피해 아내와 자식들을 미국으로 보낸 뒤 1951년 한참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한국으로 귀국하고 부산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합니다.
"아버지는 영웅이었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영웅처럼 살수 없고 또 그렇게 살 필요도 없다."
마무리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것이 뒤따르고 포기해야 할 것이 분명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준생의 이야기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시는가요? 그저 나라를 반역한 반역자로 보이나요? 많은 관점이 있었지만 만약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똑같은 상황이 있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어떻게 하셨을 거 같나요? 생각이 많아지는 글과 함께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