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이룹니다, 오딘박스(OdinBOX)

언제나 어디서나 오딘박스와 함께!

ZARD, 사카이 이즈미(坂井泉水)

간지뽕빨리턴님 2025. 5. 31. 11:46
반응형

J-POP의 대명사, 사카이 이즈미

‘지지 말아요(負けないで)’로 시대를 울린 그녀, 사카이 이즈미의 이야기

1990년대 J-POP(제이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중 하나가 바로 ZARD의 사카이 이즈미(坂井 泉水)입니다. 그녀는 밴드 ZARD의 리드 보컬이자 작사가로서 수많은 명곡을 남기며 당시 일본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특히 수많은 곡 중 「負けないで」(지지 말아요 - 마케나이데[makenaide])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시기에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한 응원가로 널리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2007년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사카이 이즈미의 맑고 따뜻한 목소리와 진심이 담긴 노랫말은 아직도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의 삶 전반을 되돌아보며, 음악과 추억 속에 남은 사카이 이즈미의 모습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목차

    ZARD - 坂井泉水

    어린시절의 배경 및 가족 이야기

    사카이 이즈미는 1967년 2월 6일 일본 후쿠오카현 쿠루메 시에서 태어나 가나가와현 하다노 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자동차 운전학교 강사였으며 그녀에게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이즈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의 본명은 카마치 사치코(蒲池幸子)로 평범한 가정의 아이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운동을 사랑하는 밝은 소녀였던 그녀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부에서 활약하는 등 매우 활달하고 운동신경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주변에서는 아주 이쁜 아이라 불리며 인기가 있을 정도로 남다른 매력을 가진 아이였다고 이웃이 이야기하기도 했죠. 학생 시절 내내 육상과 테니스에 열중하면서도 예술적 감성도 키워나간 사카이 이즈미는 훗날 그녀의 음악 세계에 밑거름이 된 다양한 경험들을 쌓으며 자랐습니다.

     

    학창 시절을 거쳐 그녀는 쇼인 여자단기대학(현재는 쇼인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영어 실력을 쌓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 부동산 회사의 총무과에서 오피스 레이디로 2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사회 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였던 그 시절 사카이 이즈미는 노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고 지역 노래자랑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만큼 숨은 가창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가라오케 여왕이라는 수상 경력이 계기가 되어 연예 기획사인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 캐스팅되어 가요계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가족과 일상을 소중히 여기던 평범한 청춘이었던 그녀에게 이 순간은 훗날 전설이 시작되는 작은 첫걸음이었습니다.

    가수가 되기 전 삶

    본격적인 가수 데뷔 전에 사카이 이즈미는 잠시 연예게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 발탁된 후 그녀는 일본 항공(JAS)의 광고 모델로 활동을 하며 청순한 이미지로 얼굴을 알렸고 이어 닛신(Nissin) 자동차 레이싱팀의 레이싱 모델로도 활약을 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미모와 당찬 매력 덕분에 각종 광고와 잡지 화보에도 등장했는데 이 시기에 촬영한 사진집 등이 있습니다. 훗날 음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녀는 한때 발행되었던 이러한 사진집이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을 알고 마음 아파하며 과거의 자신이 보여준 노출이 있는 모습에 대해서는 다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그녀는 당시 사진집이 재판매되는 것을 막고 싶어 전 소속사에 직접 팩스를 보내기도 했고 "힘들었던 과거 경험을 내 가사에 큰 영감이 되었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지난날을 의미 있게 받아들였습니다.

    이즈미는 또한 도에이(東映) 주최의 가라오케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데, 이러한 경력을 통해 무대 경험과 자신감을 조금씩 키워갔습니다. 1990년에는 인기 애니메이션 주제가로 유명한 그룹 B.B.Queens의 코러스 가수 오디션에 도전하여 Ann Lewis의  六本木心中와 덩 리쥔의 Tsugunai를 불렀습니다. 비록 최종 합격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나가토 다이코(長戸大幸) 프로듀서의 눈에 그녀의 가능성이 들어왔습니다. 나가토 프로듀서는 일본 최고의 히트메이커로 이름난 인물로 B’z와 BOØWY 등을 성공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는 노래에 대해 열정과 맑은 음색을 가진 사카이 이즈미에게서 특별한 잠재력을 발견했고, 그녀를 가수로 데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사카이 이즈미는 본명 대신 泉水(이즈미)라는 예명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이는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기 위한 다짐이었습니다. 심지어 1967년생이었던 그녀는 프로필 상으로는 출생연도를 1969년으로 두 살 어리게 표기를 했을 만큼 데뷔를 앞두고 여러 가지 리셋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수가 되기 전 모델과 이벤트 무대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카이 이즈미는 마침내 음악이라는 자신의 꿈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데뷔 과정과 ZARD 결성 과정

    1991년 사카이 이즈미는 다이코 나가토 프로듀서의 기획 아래 ZARD(자드)라는 이름의 밴드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하게 됩니다. ZARD라는 그룹명에서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카이 본인이 어딘가 록밴드처럼 들리는 어감이라서 선택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ZARD 결성 초기에는 5명의 멤버가 함께 했는데 사카이 이즈미가 보컬을 맡고 기타, 키보드 등을 연구하는 남성 멤버들이 합류한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밴드는 비교적 짫은 기간 내에 체제가 변동되었습니다. 데뷔 싱글 발표 후 몇 개월 사이에 다른 남성 멤버들이 차례로 팀을 떠났고 1993년경부터는 사카이 이즈미 혼자만 ZARD의 얼굴이자 핵심 멤버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형식상으로 밴드였지만 결국 ZARD의 사카이 이즈미의 원맨 프로젝트처럼 되었고 이후 그녀는 ZARD라는 이름으로 솔로 가수 활동을 지속하는 독특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집 앨범 표지

    ZARD의 데뷔 싱글 <Good-bye My Loneliness>는 1991년 2월 10일에 발매되었으며 후지 TV 드라마 <결혼~ 이상과 현실>의 주제가로 쓰이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오리콘 차트 최고 9위를 기록하며 신인치고는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사카이 이즈미의 맑고도 힘 있는 보컬이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어 발표한 몇 장의 싱글은 상대적으로 큰 반항을 얻지 못하기도 했지만 1992년 말 발표된 4번째 싱글 <잠 못 이루는 밤을 안고(眠れない夜を抱いて)>부터는 ZARD 특유의 밝고 세련된 팝 록 스타일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곡의 프로모션을 위해 사카이가 음악 방송에 출연을 했을 때 당시 MC였던 다모리(일본의 유명 방송인)가 "왜 이제야 무대에 나오게 되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ZARD 프로젝트가 확실히 성공할 때까지는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고 답을 했습니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카이 이즈미와 ZARD 팀은 음악의 완성도와 지속 가능성을 먼저 다지고 대중 앞에 서겠다는 신중한 태도로 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ZARD는 일본 가요사에 길이 남을 대히트를 터트립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 다룰 〈負けないで(지지 말아요)〉의 성공입니다.

    대표곡 「負けないで」에 얽힌 이야기와 시대적 의미

    사카이 이즈미 싱글앨범 표지

    1993년 1월 27일 발매된 ZARD의 여섯 번째 싱글 〈負けないで(마케나이데, 뜻: 지지 말아요)〉는 사카이 이즈미를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곡입니다. 이 노래는 일본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침체기에 접어든 사회 분위기 속에서 패배하지 말고 힘내자라는 메시지로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발매 당시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경기 불황과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지지 말아요는 그러한 시대에 등불처럼 나타나 국민들을 위로한 응원가로 사랑받게 됩니다. 사카이 이즈미 본인도 음악 방송 뮤직스테이션에 출연했을 때 이 노래가 취직 시험이나 입시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훗날 많은 팬들은 지지 말아요를 들으며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지 말아요는 단순한 사랑 노래나 아이돌의 히트곡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응원의 노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더보기

    ふとした瞬間に 視線がぶつかる

    후토시타 슌칸니 시센가 부츠카루

    우연한 순간에 시선이 마주쳐요

     

    幸運しあわせのときめき 覚えているでしょ

    시아와세노 토키메키 오보에테 이루 데쇼

    행운의 두근거림 기억하고 있죠

     

    パステルカラーの季節に恋した

    파스테루 카라-노 키세츠니 코이시타

    파스텔 컬러의 계절을 사랑했던

     

    あの日のように 輝いてる あなたでいてね

    아노 히노 요-니 카가야이테루 아나타데 이테네

    그 날 처럼 빛나고 있는 당신으로 있어줘요

     

    負けないで もう少し

    마케나이데 모- 스코시

    지지 말아요 조금만 더

     

    最後まで 走り抜けて

    사이고마데 하시리 누케테

    마지막까지 달려나가요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돈나니 하나레테테모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心は そばにいるわ

    코코로와 소바니 이루와

    마음은 곁에 있어요

     

    追いかけて 遥かな夢を

    오이카케테 하루카나 유메오

    좇아가요 아득히 먼 꿈을

     

    何が起きたって ヘッチャラな顔して

    나니가 오키탓테 헷챠라나 카오시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 하고선

     

    どうにかなるサと おどけてみせるの

    도-니카 나루사토 오도케테 미세루노

    어떻게든 될 거야라고 웃어 보이는 거예요

     

    “今宵は私と 一緒に踊りましょ”

    "코요이와 와타쿠시토 잇쇼니 오도리마쇼"

    "오늘 밤은 저와 같이 춤춰요"

     

    今も そんなあなたが好きよ 忘れないで

    이마모 손나 아나타가 스키요 와스레나이데

    지금도 그런 당신이 좋아요 잊지 말아요

     

    負けないで ほらそこに

    마케나이데 호라 소코니

    지지 말아요 봐요 저기에

     

    ゴールは近づいてる

    고-루와 치카즈이테루

    골은 가까워지고 있어요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돈나니 하나레테테모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心は そばにいるわ

    코코로와 소바니 이루와

    마음은 곁에 있어요

     

    感じてね 見つめる瞳

    칸지테네 미츠메루 히토미

    느껴줘요 바라보는 눈동자를

     

    負けないで もう少し

    마케나이데 모- 스코시

    지지 말아요 조금만 더

     

    最後まで 走り抜けて

    사이고마데 하시리 누케테

    마지막까지 달려나가요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돈나니 하나레테테모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心は そばにいるわ

    코코로와 소바니 이루와

    마음은 곁에 있어요

     

    追いかけて 遥かな夢を

    오이카케테 하루카나 유메오

    좇아가요 아득히 먼 꿈을

     

    負けないで ほらそこに

    마케나이데 호라 소코니

    지지 말아요 봐요 저기에

     

    ゴールは近づいてる

    고-루와 치카즈이테루

    골은 가까워지고 있어요

     

    どんなに 離れてても

    돈나니 하나레테테모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心は そばにいるわ

    코코로와 소바니 이루와

    마음은 곁에 있어요

     

    感じてね 見つめる瞳

    칸지테네 미츠메루 히토미

    느껴줘요 바라보는 눈동자를

    음악적으로도 이 곡은 경쾌한 팝 록 사운드와 희망찬 가사, 그리고 사카이 이즈미의 청아한 보컬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ZARD만의 색깔을 확립했습니다.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며 약 164만 장이상의 판매량을 올려 1993년 연간 싱글 판매 6위를 차지하는 등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ZARD 통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싱글로 이후에도 〈揺れる想い(흔들리는 마음)〉, 〈My Friend〉등의 히트곡이 잇따랐지만 지지 말아요의 임팩트를 넘어서진 못했다고 평가되곤 합니다.

    24시간 테레비 지구를 구한다 中

    또한, 이 곡은 일본의 유명 자선 방송 프로그램인 24시간 테레비의 응원곡으로 선정되어 전국적인 응원가로 거듭났습니다. 사카이 이즈미는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 큰 무대의 테마곡으로 사용된 것을 무척 영광으로 여겼고 매년 24시간 TV 마라톤이 방송될 때면 기쁜 마음으로 시청했다고 합니다. 지지 말아요의 밝고도 뜨거운 선율은 이후로도 수많은 커버와 편곡을 통해 재해석되었으며 일본 대중음악의 상징적인 응원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힘들 때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지지 말아요, 조금만 더'라는 후렴구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리며 끝까지 달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을 OST로 전혜선 씨가 부르는 지자마로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사카이 이즈미가 남긴 말과 인터뷰

    화려한 무대 뒤에서의 사카이 이즈미는 겸손하고 솔직한 인품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대중과 어울려 지낼 때 좋은 가사가 나올 수 있다고 믿어 한창 인기 절정이었던 시기에도 일반인들 틈에서 일상을 보내며 삶의 느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하철 출퇴근하고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는 등 생활 면에서 철저히 평범함을 고수했고, 외출할 때도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에 거의 민낯으로 다니곤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수수하게 다녔기 때문에  '오히려 진하게 화장하면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르더라'라고 농담처럼 말한 적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소탈한 모습 덕분에 직접 마주친 적 있는 일반인들조차도 선뜻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고, 이로 인해 ZARD의 보컬은 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설의 인물이라는 마치 도시전설과 같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사카이 이즈미가 직접 남긴 말들 중에는 오늘날까지도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 노래가 사랑받은 건 그 순수함이 모든 이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자극적인 요소가 아닌 진심 어린 순수함이 듣는 이들의 마음에 닿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다는 그녀의 소신이 보이는 말입니다. 또한 생전에 공개적으로 매스컴에 편지를 보낸 적 없었던 그녀가 2006년 한국에 15주년 베스트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 이례적으로 한국 팬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 편지에는 사카이 이즈미는 '15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해 왔습니다. 이것은 음악의 신이 제게 주신 시련이자 보물입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의 응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사망 원인과 그 당시의 상황, 팬들과 사회의 반응

    2006년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사카이 이즈미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다행히 초기 수술로 일단 치료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2007년 4월 암이 페로 전이되어 그녀는 도쿄의 게이오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투병 중이었지만 그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매일 병원 안을 산책하며 체력을 길렀고 치료 경과가 좋아지자 새 앨범 준비까지 계획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7년 5월 26일 아침 비가 온 뒤 미끄러운 옥외 계단을 걷던 중 그녀는 3미터 아래로 실족하여 머리를 심하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다음 날인 5월 27일 향년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안타까운 그녀의 별세소식에 일본 열도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평소 사생활을 철저히 숨기던 그녀였기에 처음에는 정확한 사고 경위가 알려지지 않아 근거 없는 추측과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소속사를 통해 '호전되던 중 우발적인 사고였다'라는 공식 발표가 전해지면서 팬들은 더욱 가슴 아파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새 공연 투어와 음반 계획을 세울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그녀였기에 팬들은 그 긍정적이던 에너지를 기억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사카이 이즈미의 장례는 음악장 형식으로 거행되어 2007년 6월 27일 도쿄 아오야마장에서 사카이 이즈미를 보내는 모임으로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무려 4만여 명에 이르는 팬들이 몰려와 고인을 애도했는데 갑작스러운 비보 한 달 만에 확인된 그녀의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에 일본 사회가 다시 한번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에는 생전 그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수많은 조화가 끝없이 이어졌고 조용히 흐르는 ZARD의 음악을 들며 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인사를 건네었습니다. 동료 가수들과 음악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하여 헌화했고 특히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진 지지 말아요를 들으며 많은 이들이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는 후일담도 전해집니다. '너무도 갑작스레 떠나보낸 위대한 재능'이라며 언론은 일제히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과 추모 공간에 남긴 글을 통해 '당신의 노래가 얼마나 위로받았는지 모른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라는 등의 메시지로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편, 그녀의 죽음 이후 남은 ZARD 스태프와 동료 음악인들은 사카이 이즈미의 유산을 기리 위한 다양한 추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2007년 9월에는 ZARD 추모 콘서트 투어가 열려 생전 그녀와 친분이 있었던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라 ZARD의 명곡을 불렀습니다. 도쿄, 오사카 등을 순회한 이 콘서트에는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매진이 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며 마지막 공연은 그녀의 1주기인 2008년 5월 27일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 체육관에서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팬들은 슬픔 속에서도 한 목소리로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What a beautiful memory'라 명명된 그 추억의 무대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이후로도 매년 사카이 이즈미의 기일이 되면 공식 홈페이지와 팬클럽을 통해 추모 메시지가 전해지고 여러 매체에서 그녀의 음악을 재조명하곤 합니다. 그녀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청춘의 목소리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동영상으로 보기(#)]

    <입원해서>
     
    그 사람이 이불을 덮고 울었다.
    그건 지금까지 처음본 눈물이였다.
    이 말을 들었을때,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아 나도 여기서 "제1차 전투에 지고있네"라고 
    당신이 중얼거렸다.
    그걸 들을때 불안했다
    투지가 넘쳐흐르는 순간순간 목숨을 꽉 잡아가며..
     
    시내가 잘 보이는곳을 기지에서 두사람을 손을 잡고 바라봤다.
    <이제 좀 편해져도 돼, 지금까지 열심히 했잖아>
    말이 없어도 그 등짝으로 나에게 알려주는거 같았다
    그걸로 진짜 연인이 된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 인생에서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길이 있다
    그럴땐 그 길을 난 묵묵히 걸어갈거에요!
    < 번역 출처 : 네이버 카페 - ZARD 기념관 [https://cafe.naver.com/zard0/9319]

    그녀의 음악 스타일과 ZARD의 활동 변화 흐름

    사카이 이즈미와 ZARD의 음악은 맑고 깨끗한 팝 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희망적이면서도 섬세한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초기 ZARD 곡들은 록의 색채가 다소 가미된 경쾌한 리듬이 특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부드러운 멜로디와 발라드와 청량한 팝 록을 고루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ZARD의 모든 노래 가사는 거의 예외 없이 사카이 이즈미 자신이 직접 썼는데 그녀는 17년 간의 활동 기간 동안 약 150곡에 달하는 방대한 창작을 남겼습니다. 사랑, 우정, 희망 등 일상의 감정을 솔직한 언어로 풀어낸 그녀의 가사는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듣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울임을 주었고 이는 평범한 단어들의 특별한 울림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카이는 노랫말뿐 아니라 시집 출간과 유화 그림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재능을 보였는데 이러한 다방면의 예술적 감수성이 그녀의 음악 세계를 한층 풍부하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 ZARD의 활동 방식 역시 다른 밴드나 가수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사카이는 극도의 내성적 성격으로 유명해서 데뷔 초부터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주변이 없어서 차라리 녹음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소속사도 의도적으로 그녀의 신상을 노출하지 않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은둔형 활동은 오히려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작용해 대중의 궁금증을 높였고 얼굴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그녀에게 미스터리 여성이라는 수식어도 붙기도 합니다. ZARD가 데뷔하고 8년 동안 정규 콘서트 한 번 열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첫 단독 라이브인 1999년 8월 팬 600여 명을 초청하여 호화 유람선 퍼시픽 비너스 호 위에서 열린 전례 없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이 공연에 신청인원은 무료 200만여 명이 응모하여 3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은 600명이 승선하는 진풍경을 낳고 바다 위 작은 무대에서 사카이 이즈미는 처음으로 팬들 앞에 라이브 노래를 선사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4년에야 비로소 ZARD의 첫 전국 투어 콘서트 What a beautiful moment가 개최되어 도쿄 부도칸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때 사카이를 보기 위해 공연장에 모인 수많은 관객들 앞에 선 그녀는 잠시 놀라 무대 뒤로 숨었다가 용기를 내어 다시 나와 손을 흔들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수줍고 사랑스러웠던지 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음악 작업에 집중하고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독특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ZARD는 음악 차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남겼습니다. 오히려 방송을 통해 소비되는 이미지 없이 오로지 노래와 음반만으로 승부했기에 음악 팬들은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 자체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ZARD는 일본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기록들을 써 내려 갔습니다. 사카이가 활동한 기간 동안 ZARD는 오리콘 싱글 차트 1위 곡을 12곡이나 배출했고 정규 앨범 9장도 모두 오리콘 1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솔로 여성 가수로써는 경이적인 수준으로 ZARD는 총 음반 판매량에서도 3800만 장을 돌파하여 역대 음악 아티스트 중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대 한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여성 보컬로 꼽히는데 이는 당대 최고 인기였던 아무로 나미에조차도 ZARD의 누적 판매량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큰 인기를 누렸음에도 정작 사카이 이즈미는 음악 시상식 등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데뷔 이후 단 한 번의 레코드 대상조차 받지 않았는데 업계에서는 생방송 무대에 올라야 하는 수상식을 그녀가 고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데에서 행복을 느낀 그녀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일본 시부사와역에는 열차 진입음이 ZARD의노래로 나옵니다.

     

    ZARD의 음악은 일본 대중문화 전반에도 큰 족적을 남깁니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GT>, <명탐정 코난> 등 인기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들의 주제가로 ZARD의 노래가 쓰여 남녀노소 폭넓은 사랑을 받았고 같은 작곡가 겸 프로듀서  라인에 있던 Wands, Deen, Field of View 등의 후배 밴드들에게 곡을 써 주거나 가창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존경했다는 테레사 텡을 위해 노랫말을 제공했을 정도로 작사가로서 폭넓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또한 19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ZARD의 노래가 많은 이들의 상처를 위로했고 학교 음악 교과서에 ZARD의 노래가 실리기도 하는 등 시대를 초월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렇게 한 시대의 청춘을 응원하고 함께 눈물을 흘려준 노래들이었기에 사카이 이즈미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 지금도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팬 입장에서의 감정적 공감 - 추억 속의 그녀

    팬들에게 사카이 이즈미는 단순한 인기 가수를 넘어 삶의 동반자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슬플 때 위로가 되고 기쁠 때 더욱 즐겁게 해주는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고 힘든 순간마다 지지 말아요, 조금만 더 라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사카이 이즈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매년 그녀의 기일이 다가오면 일본 곳곳의 노래방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지 말아요 노래가 울려 퍼지고 SNS와 블로그에는 그녀를 추억하는 글들과 영상들이 공유가 됩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요라는 노랫말은 이제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영원한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젠 볼 수 없지만 추억 한편에 소중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사카이 이즈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적어보니 그녀가 왜 아직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특별하게 남아있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려 노력하며 화려함보다는 진정성을 택했던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무엇보다 힘들고 지칠 때 지지 말아요라고 다독여 주는 맑은 목소리는 우리의 청춘과 인생에 깊숙이 스며들어 때로는 눈물이 되고 때로는 웃음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카이 이즈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좋은 작품은 신이 준 보물이라 믿으며 모든 열정을 바쳤던 그녀의 노래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서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바래지 않을 추억과 함께 그녀가 남긴 노랫말처럼 우리도 절대로 지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영원한 추억 속의 그 목소리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 오로지 팬심으로 적은 글입니다. 글에 있는 사진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댓글을 알려주시면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