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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했던 나의 아버지, 하늘로 보내드리며 적는 편지

간지뽕빨리턴님 2025. 12.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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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했던 원망 끝에 아버지를 보냈습니다.
술 냄새 속에 가려졌던 당신의 진심

2025. 12. 24. 소리 내지 못한 고백

2025년 12월 7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틀 뒤인 12월 9일, 입관과 발인을 거쳐 화장까지 마쳤습니다. 경제적인 사정과 여러 이유로 가족들과 고심 끝에 '무빈소 장례'를 치렀습니다. 빈소도 없이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길,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가슴 한구석이 무겁고 씁쓸했습니다.

 

아버지의 술 냄새, 그리고 나의 상처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계셨습니다. 현관문을 열 때부터 풍겨오던 지독한 술 냄새는 어린 저에게 공포였고, 지울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 술에 의지해 삶을 버티던 당신의 모습 때문에 저는 참 많이도 울었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자랐습니다.

 

그 상처가 너무나 깊었기에, 저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아니,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 먹는 것'에 가깝습니다.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거부였고, 제 인생만큼은 술 냄새 없는 온전한 것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앓으셨던 열병은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뒤틀린 걸음걸이, 침침해진 눈, 잘 들리지 않던 귀... 그 불편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셨을까요. 원망의 뒤편에는 늘 그 가냘픈 뒷모습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상처를 주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제게 단 하나뿐인 아버지였습니다.

"너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아라."

무뚝뚝하게 내뱉으셨던 그 말씀이 이제는 유언처럼 가슴에 박혔습니다. 당신처럼 술에 기대어 무너지는 삶이 아니라, 고개를 들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서기를 바랐던 그 마음. 당신은 당신의 삶을 통해 제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말씀하고 계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말의 빈자리, 익숙해지지 않는 공허함

거리에는 벌써 연말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가족들과 웃으며 걷는 사람들을 보면, 당신의 빈자리가 왜 이렇게 시리도록 차갑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이런 외로움과 공허함 속에 살아와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번 12월은 유독 씁쓸하고 힘이 듭니다.

 

장례 중에도 어머니가 무너질까 봐 일부러 덤덤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수천 번 되뇌었습니다. "다시 내 아버지로 태어나주신다면, 그때는 당신의 술 냄새조차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을 만큼 제가 더 잘하겠노라고..."

아버지, 이제 이곳에서의 모든 미련과 나빴던 기억은 다 털어버리세요.
술기운 없이 맑은 정신으로, 아프지 않은 다리로 저 하늘을 마음껏 누비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 공허함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미 떠난 아버지의 짐을 덜어드리는 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부디, 편히 쉬세요.

2025년 12월 24일
못다 한 사랑을 담아, 아들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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